세상을 바꾼 노래 / 정태춘

2011. 11. 21. 16:56☆음악창고

 

 

 

정태춘 '시인의 마을' (1978)
새로운 포크의 원형, 새로운 투쟁의 원점

[시인의 마을](1978)은 새로운 포크 가수의 등장을 알린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온 김민기와 한대수, 양병집, 서유석 같은 음악인들은 타의에 의해 활동을 그만뒀거나 변화를 고민하고 있었다

(단적인 예로 1977년 발표한 서유석의 앨범에는 조동진의 곡과 당시 트로트 고고 열풍을 일으켰던 안치행의 곡들이 함께 수록돼있었다).

이때 정태춘이 등장했다. 단숨에 그는 맥이 끊겨가고 있던 한국 모던 포크의 적자로 평가받았다.

그가 만들어낸 노랫말과 선율, 그리고 그의 독특한 정서는 그런 자격을 얻기에 충분했다.

정태춘의 음악에는 선배 음악인들이 갖고 있지 못한 토속적인 정서가 있었다. 이를 굳이 '한국적'이라고 표현하지는 않겠지만,

그의 고향인 평택 도두리에서 농사를 짓고 대추리(!)의 벌판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정서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 정서를 바탕으로 스무 살 무렵의 방황과 고민을 더해 노래를 만들었다.

군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서해에서'를 만들기도 했던 정태춘은 전역하자마자 이 노래들을 모아 첫 번째 앨범 [시인의 마을]을 발표했다.

 

'시인의 마을'에 담긴 치열한 고민과 '촛불'의 서정성,

그리고 '서해에서'에서 드러나는 방황의 흔적을 빼어난 선율과 비장한 목소리에 실어 전달하였다.

그가 들려주고자 했던 이야기와 노래는 같은 시대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던 젊은이들에게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공감이 모아져 MBC 가요대상 신인상과 TBC 방송가요대상 작사 부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명백히 '인기가수'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인기의 이면에는 이후 정태춘의 힘겨운 싸움을 예고하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창문을 열고 내다봐요 / 저 높은 곳에 우뚝 걸린 깃발 펄럭이며 / 당신의 텅 빈 가슴으로 불어오는 /

더운 열기의 세찬 바람 / 누가 내게 손수건 한 장 던져주리오 / 내 작은 가슴에 얹어주리오 /

누가 내게 탈춤의 장단을 쳐주리오 /그 장단에 춤추게 하리오 / 나는 고독의 친구 /

방황의 친구 / 상념 끊기지 않는 번민의 시인이라도 좋겠소" (원곡 가사)

"창문을 열고 내다봐요 / 저 높은 곳에 푸른 하늘 구름 흘러가며 / 당신의 부푼 가슴으로 불어오는/

맑은 한 줄기 산들바람 / 누가 내게 따뜻한 사랑 건네주리오 / 내 작은 가슴을 달래주리오 /

누가 내게 생명의 장단을 쳐주리오 / 그 장단에 춤추게 하리오 / 나는 자연의 친구 /

생명의 친구 / 상념 끊기지 않는 사색의 시인이라도 좋겠소" (수정 가사)

 

 

 

 

 

정태춘이라고 심의의 칼을 피해갈 순 없었다.

우리가 그저 아름다운 서정성을 품고 있는 사색적인 노래라 여겼던 '시인의 마을'마저

이렇게 심의에 난도질당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앨범에 수록되었다.

"대중가요 가사로는 방황, 불건전한 요소가 짙어 부적절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박정희 정권은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는지 한 개인의 사색마저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게 하였다.

원곡의 노랫말에서 그 어떤 불순한 의도를 찾을 수 있나? 하지만 유신 시대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였다.

이때부터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한 정태춘은 1990년 사전심의를 거치지 않은 불법(!) 음반 [아, 대한민국]을 발표하며 고독한 싸움을 시작한다.

혼자였다. 함께 문제의식을 느끼고 연대해야 할 음악인들은 외면했다.

그의 길고 외로운 싸움 끝에 사전심의제는 폐지됐다.

한국 대중음악의 전성기라고 평가받는 1990년대의 다양한 음악적 시도들은 정태춘이 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도 그는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시대는 그를 계속 싸우게 만들었고,

아이러니하게 '시인의 마을'과 '촛불' 같은 노래를 더 이상 부르지 않게 만들었다.

"시대적 문제의식을 공유한 집회에서 어릴 적 사춘기적 감상이 담긴 노래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그의 투쟁은 2000년대에도 평택 대추리를 비롯해 수많은 시위 현장에서 계속 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쑥스럽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것도 내 전체 중의 하나라고 여"기면서 다시 예전의 노래들을 부르고 있다).

'투사' 정태춘이 온전하게 '음악인' 정태춘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아직 시대가 허락하지 않고 있다.

 

                                                                                                            <다음 뮤직에서 옮겨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