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장용영수위의식

2015. 10. 22. 23:57☆ 2015 년 추억



***   수원화성 상설공연 장용영수위의식   ***



정조대왕이 수원 화성에 행차하였을 당시

군사들이 궁궐을 지키는 수위(守衛) 모습과 왕이 군사훈련을 지휘하는 모습을 재현한다.

여기서 장용영(壯勇營)은 1785년 조선 정조대왕이 만든

최정예 특수경호부대로 왕의 호위 전담부대이다.


4월 ~ 10월까지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에

화성행궁의 정문 신풍루 앞에서 정조대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 군사들의 훈련 모습과

정조대왕, 혜경궁 홍씨를 만날 수 있다.










훈련 친림을 위해 정조대왕이 행차하셨다.

침림한 정조대왕과 혜경궁 홍씨가 관람객과 인사를 한다.

수원시민 중에서 정조대왕과 혜경궁 홍씨 선발하는데

처음에는 매년 선발하다가 2004년부터 격년제로 선발한다.

수원화성을 비롯하여 수원의 관광을 홍보하고 화성문화제, 장용영 수위의식 등

각종 전통문화행사에 참여하여 수원 관광헝보사절 역할을 한다.









가운데 왕을 상징하는 용이 그려진 노란깃발과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4개의 깃발

(국왕께 각군영 군사들이 훈련에 참가하여 군영을 상징하는 깃발을 올린다.)


***


사람이 많아 자리가 마땅치 않아

몇컷만 찍었다.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


      상대적으로 여성이라면 주목을 받지 못하는 조선 역사에서 비운의 여인이라 알려진 한 여인이 있다.

      영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에 이르는 궁중의 일기 <한중록>을 남긴 그녀 혜경궁 홍씨.



      혜경궁 홍씨 가계


      혜경궁 홍씨는 홍주원과 정명공주의 자손이다.

      1935년 한양에서 태어난 혜경궁 홍씨는 태어날 때부터 태몽이 검은 용이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 홍봉한은 성균관 유생이었는데 영조대의 대표적인 노론 집안이다.


      8년 뒤인 1744년 혜경궁 홍씨는 10세의 나이로

      당대 권세를 쥐고 있던 노론 집안의 배경을 입고

      이후 사도세자라 불리는 세자의 아내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

      그녀와 사도세자의 나이 이때 모두 10살이었다.




              혜경궁 홍씨의 궁중생활


              10세의 어린 혜경궁 홍씨는 그 특유릐 총명함으로 궁월 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다.

              그녀를 아꼈던 영조의 많은 공주들은 물론 시어머니와 영조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영조가 사도세자를 멀리 하기 시작하면서 혜경궁 홍씨의 비극도 시작된다.

              물론 아직도 영조가 사도세자를 멀리 하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추측이 난무한 것이 사실이지만

              정치적인 대립과 사도세자의 행동에 대한 영조의 곱자 않은 시선이 계속되면서

              영조는 어느덧 사도세자를 기피하는 것을 넘어 싫어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서 혜경궁 홍씨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태 이리저리 눈치면 봐야 했고

              1755년 그나마 세자편이던 대비 김씨, 왕비 서씨마저 죽으면서 부자사이의 불화는 더욱 심해진다.

              이러한 와중에 영조의 미움을 받던 사도세자는 그 행동마저 절제하지 못하면서

              그 정신과 몸 모두가 피폐해져 갔고

              마침내 1762년 영조는 사도세자를 폐하고 뒤주에 가두어 죽이라는 믿지못할 형벌을 내린다.

              하지만 이때 혜경궁 홍씨는 훗날 정조가 되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남편의 잔혹한 죽음을 그냥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혜경궁 홍씨와 정조



              죽은 사도세자가 폐서인 되자 남편을 잃은 혜경궁 홍씨는 이에따라 세자빈 자리에서 내려와야했고

              궁궐 밖을 빠져나가야먄 했다.

              그러나 얼마 후 자신의 아들을 죽여야 했던 영조 역시 죄책감을 느꼈던지

              세자로 복위시키고 세자빈 홍씨를 다시 궁궐로 불러들였다.


              이에 혜경궁 홍씨는 자신이 아들이자 세손인 이산(정조)를 지키고자 영조의 마음에 감사함을 표했고

              이러한 노력 때문이었을까 정조 역시 영조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게 된다.

              이후 햬경궁 홍씨의 시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선희궁이 세상을 떠났고

              영조가 죽기전 12년동안 무수한 위협속에서도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

              숨죽여 살았던 혜경궁 홍씨는 마침내 빛을 보게된다.


              1776년 영조의 뒤를 이어 마침내 세손 이산이 왕위에 오르나 그가 바로 정조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자신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극진히 대했고 

              혜경궁이 환갑이 되던 해에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해 떠나는 수원행차를 진행해서

              혜경궁 홍씨가 사도세자 묘에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후 1795년 혜경궁 홍씨는 일종의 회고록인 <한중록>을 저술하여

              지금까지 궁중문학의 대표 작품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1800년 자신의 아들 정조자 죽고 정조릐 아들이자 자신의 손자인 순조가 왕위에 올랐을때도 살아

              15년이나 지난 1815년 81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며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끝이난다.

              능은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융릉으로 현재 남편 사도세자와 함께 묻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