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

2024. 5. 29. 00:22☆ 궁시렁궁시렁

   한식 - 보리밥   

 

가난한 서민 구원한 식량...
1980년대부터 건강食으로 격상

윤선도(尹善道·1587~1671년)는 유배지에서 쓴 
‘밥상을 마주하고’란 시(1645년·인조 23년)에서
‘샘물 가득 떠서 보리밥 말아 먹으면, 유인(幽人)의 살림살이 가난하지 않다오’라고 읊고 있다.
 
날이 더워지면 시원한 물에 구수한 보리밥을 말아먹으며
더위를 쫓은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보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구원의 식량이었다.
조선시대에서 1960년대까지 이맘때(5~6월)는 보릿고개였다.
쌀은 떨어지고 보리는 덜 익어 수확 못 하는 배고픔의 시절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장기농가(長鬐農歌)’에서
'보릿고개 험한 고개 태산같이 험한 고개’라고 탄식하고 있다. 
 
1세기경 한반도에 들어온 보리는 한반도 기후와 잘 맞아 농사가 잘되는 작물이었다.
단점은 도정이 어려워 거칠다는 것이다.
양반이나 부자들은 쌀밥을 먹었지만
서민들은 보리만으로 지은 꽁보리밥이나 보리에 쌀을 조금 섞어 밥을 먹었다. 
 
세조는 신하들에게 “유자(儒者) 중에는 지식 수준은 높으나 겸손하지 못한 자가 많으니,
만약 백성을 다스리게 되면 반드시 뜻을 낮추어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보리밥을 하사하는 뜻을 너희들은 알겠느냐”며 보리밥을 하사했다. 
 
조선시대에도 보리밥은 물에 말아먹거나 상추쌈을 싸서 먹었다.
송남잡지(松南雜識·19세기 말)에 보리밥은 단옷날 먹는 시식(時食)으로 등장한다.
해동죽지(海東竹枝·1925년)에는 ‘오월 단옷날에 햇보리를 가묘에 올리는데
보리밥과 꿀물을 섞은 보리수단(麥水團)을 먹는다’고 적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42년 경성제국대학이 발간한 ‘토막민의 생활·위생(土幕民の生活·衛生)’이란 책자에는
쌀 35%에 보리 64%를 섞은 보리밥을 먹는 한국 농민들의 이야기가
‘식사의 궁핍함’ 본보기로 등장한다. 
 
1960년대 들어 혼분식 장려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보리는 행정명령에 의해 밥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필수 곡물이 된다.
학교에서는 밥에 보리가 들었는지 도시락 검사를 했다. 
 
1980년대 이후 흰쌀보다는 현미나 보리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보리밥은 건강과 맛으로 먹는 별미로 격상됐다.

                                                   - 신문에서 옮겨적었다. -

 

***

더위가 몰려드는 초여름부터 한여름까지
보리밥은 별비로서 줏가를 상승시킨다.
옛날에 엄니는 꽁보리밥을 별미로 드시길 참 좋아하셨다.
친구분들과 보리밥집 가기를 좋아하셨는데.
더운 여름날 열무김치에 된장찌개 조금 부어서 썩썩 비벼 먹으면
그 맛은 정말 꿀맛 이었었다고 나도 기억한다.
더위의 계절엔 아마도 보리밥의 제철인가 싶다.
우리도 늘 보리쌀을 섞어서 밥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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