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복숭아 - 이중섭(화가)
서양화가 이중섭의 막역한 친구(시인 구상)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의 일입니다.
병상에 누워 있던 그 친구는
이중섭이 문병 오기만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내가 입원한 걸 알 텐데…….
왜 이렇게 안 오지?”
만사 제쳐두고
달려올 줄 알았던
이중섭이 오지 않자 친구는 무척 섭섭했습니다.
“아휴…….
답답해라.
정말 안 오려나? 무심한 친구 같으니라고.”
올 만한 사람은
거의 다 얼굴을 비쳤는데도
이중섭은 찾아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아직도 안 왔단 말인가?
중섭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자네 목이 먼저 빠지겠네.”
“그런 야속한 친구는
오든 안 오든 이제 난 신경 안 쓰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무척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드디어
이중섭이 병원에 찾아왔습니다.
그는 나지막이 친구를 불렀습니다.
“여보게, 나 왔네.”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친구는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 이중섭을 맞았습니다.
“이 사람아,
드디어 왔구만.
그런데 왜 이제야 오는 거야.
내가 자네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미안하네.
오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았지만
어디 빈손으로 올 수가 있어야지.”
서로의 처지를 뻔히 아는
죽마고우이거늘 빈손으로 오면 어떠냐고
친구는 짐짓 나무랐습니다.
그 때
이중섭은
들고 온 꾸러미를 내밀었습니다.
“아니, 이게 뭔가?”
“정성이라고
생각하고 받아 주게.
실은 이걸 갖고 오려고 이렇게 늦게 오게 되었네.”
친구는 선물을 풀어 보았습니다.
“아니, 이건…….”
이중섭의 선물에
친구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것은 꽃도,
음식도 아닌 액자 속에 담긴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천도를 그린 거라네.
예로부터
이 복숭아를 먹으면 무병장수한다고 하지 않던가.
눈으로라도 먹고
어서 털고 일어서길 바라네.”
친구는
이중섭이 며칠 걸려 완성해 온 천도복숭아 그림을 보고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네…….”
과일을 사 올 돈이 없어
그림을 그려 온 이중섭의 눈물겨운 우정…….
액자 속에
담겨진 천도복숭아를
품에 안자 친구는
몸도 마음도 날아갈 듯 가벼워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