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아닌 편지 / 이병률

2012. 12. 11. 21:45☆ 좋은글

        
        
         
        아무 것도 아닌 편지  / 이병률 
        어느 먼 지방 우체국 사서함번호가 적힌 
        편지가 배달 되었네
        면회를 와달라는 
        어느 감옥에서 보낸 편지
        봉투엔 받는 이의 이름만 다를 뿐 버젓이 
        내 집주소가 적혀 있었네 
        오래 책상 위에 올려둔 
        알지 못하는 이의 
        편지
        화분이 편지봉투 위로 
        마른 꽃잎들을 한움큼 쏟아놓은
        어느날
        새 봉투에 또박또박 그의 주소를 적고 
        편지를 밀어넣고 풀칠을 하였네
        이 편지를 되받는 이는 누구인가
        사랑이 참 많은 사람이어서
        들판이나 강가에서도 물살처럼
        또 어느 먼 곳에서도 
        터벅터벅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일런가
        며칠 뒤 편지는 나에게로 되돌아왔네
        그가 출감한 것으로 치자며
        마음에서 꺼낸 못으로 집 한 채라도 
        지어올리기를 바라자며 
        내 감옥의 자물쇠들을 흔들어보네 
        과도한 세상이 
        다시 그를 결박하지 않기를
        그가 더이상 모두를 미워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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